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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Riches] 강세장도 약세장도 6개월 투자 사이클…추세전환 흐름타라
강세장도 약세장도 6개월 투자 사이클…추세전환 흐름타라
기사입력 2018.03.02 04:01:03 | 최종수정 2018.03.02 11: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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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종 골든에그 대표의 `주식투자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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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종 골든에그 대표(앞줄 가운데)를 비롯한 밸류시스템자산운용 직원들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사무실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승환 기자]

타고난 힘이 좋아 중학생 때는 잠시 씨름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최종 학력은 고졸(한양대 중퇴). 계좌가 깡통이 되는 쓰라린 투자 실패도 맛봤다. 누구 밑에서 일하는 직장생활 경험은 전혀 없다.

여러모로 여의도 자산운용업계의 전형적 `양복쟁이`와는 적잖은 거리가 있는 스펙이다.
하지만 이 `야생형 인간`은 운용자산 3700억원이 넘는 헤지펀드계의 `샛별`인 밸류시스템자산운용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밸류시스템자산운용 지주사인 골든에그의 정환종 대표(36) 얘기다. 골든에그는 밸류시스템자산운용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정 대표를 포함한 회사 핵심 임원 3명이 골든에그 지분 89.5%를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정 대표와 주식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1999년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아버지가 한국통신프리텔(현 KT 무선사업부) 유상증자를 통해 주식을 받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주식이 상한가를 치더니 5000만원으로 시작한 투자액이 1년여 만에 수억 원으로 불어났다. 세상과 교류할 접점을 찾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빨갛게 급등하던 차트는 너무나 매력 있었다. 눈에서 멀어진 수능 참고서 대신에 차트분석 책이 책상 한쪽을 차지하게 됐다. 세뱃돈을 모아 만든 종잣돈을 언제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지 매일 고민했다. 잘 때도 주식 꿈을 꿨다고 한다.

대학교에 입학하러 제주에서 서울로 뜰 때 그는 4년치 등록금과 생활비 명목으로 1억원의 종잣돈을 받는다. 주식에 미쳐 있던 그는 하필 코스닥이 역사적 고점을 기록한 날 주식 계좌를 튼다.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전화를 개발한 `새롬기술`에 몰빵 투자를 했다.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그의 계좌에 들어있던 1억원이 통째로 날아가는 시련을 겪는다. 초심자에게 간혹 찾아오는 `행운`은 그를 외면했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었죠. 4년치 등록금에 생활비를 전부 날린 셈이었으니까요. 살려면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낙성대 고시원에서 주식 잘하는 사람을 찾아다녔어요. 고수들 계좌를 곁눈질하면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식으로 단타 투자에 매달렸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정보가 빠르지 않아서 차익거래 기회가 많았거든요."

한 차례 거액을 다시 날리고 100만원으로 `백의종군`을 선언한 그의 실력은 대세 상승장을 맞아 활짝 꽃을 피웠다. 100만원으로 시작한 계좌가 1년 만에 1억원으로 불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성과였다. 간신히 원금을 회복한 그는 `절대 잃지 않는 투자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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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시스템자산운용 공동 창업자인 최상민 이사도 이 무렵 만났다. 주식 이야기로 밤을 새우면서 각종 투자기법을 현실화한 시간들이었다. 정 대표는 주식에 재능이 있었다. 행동할 때와 쉴 때를 아는 과감성도 갖추고 있었다.

정 대표는 "개인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은 `레버리지`에 있다고 본다"며 "시장을 사야 할 때와 종목을 사야 할 때를 분석해 확신이 들면 과감히 레버리지를 일으켜 압축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 생각은 정 대표 투자 철학의 뼈대다. 그의 방 한가운데는 대문짝만 한 글씨로 `사람들이 두려워 행동할 때 탐욕을 갖자`는 글귀가 쓰여 있다.

2005년 4월 군대를 제대한 이후 정 대표는 본인이 개발한 `퀀트` 모델에 기반한 투자에 눈을 뜬다. 2005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700% 넘는 수익을 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신음할 때도 그의 계좌에는 돈이 불어났다. 계좌 상당수를 안전자산으로 돌려놓고,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지는 주식을 골라 단기투자로 돈을 불렸다. 어느덧 굴리는 돈이 수십억 원이 넘게 됐다. 정 대표는 "주식을 하다보니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이 모니터 너머로 보이더라"며 "매크로 변수가 보이기 시작하고부터 주식 투자가 쉬워졌다"고 말했다. 혼자 힘으로 평생 먹고살 만큼 돈을 번 그는 세상에 뭔가를 돌려줘야 할 `공적 책임` 비슷한 걸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2009년 동료 6명이 함께 만든 게 밸류시스템자산운용이다. 정 대표는 "쌓아온 투자 노하우와 철학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영업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그가 자산을 유치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제대로 투자하겠습니다`라는 전단지를 찍어 돌리기도 했다. 전혀 효과가 없었다. 경쟁이 치열한 서울을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50여 곳 프라이빗뱅커(PB) 센터에 하나도 빼지 않고 전화를 돌렸다. 모텔에 방을 잡고 빵과 우유를 돌리며 얼굴도장을 찍었다. 처음에는 `새파랗게 젊은 이상한 놈들이 왔다`고 뜨악해하던 증권사 직원들과 안면이 트였다. 결국 그를 눈여겨본 한 PB센터장이 큰손을 소개해주며 `제도권 입성`에 성공했다. 정 대표는 "진심을 다하니까 마음이 열리고 귀가 열리더라"며 "100억원을 맡겼는데 한 달에 20% 수익을 냈다. 다음달에는 200억원, 그 다음달에는 300억원으로 투자자금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트랙레코드를 쌓은 정 대표는 서울 입성에도 성공한다. 밸류시스템자산운용은 이제 4000억원에 가까운 운용자산을 굴리는 중형 헤지펀드로 올라섰다. 주식에 이어 부동산 메자닌 등 대체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회사 시스템이 갖춰진 이후 정 대표는 운용사 대표 자리에서는 물러났다. 지주사 골든에그를 세워 벤처캐피털(VC), 로보어드바이저, 가상화폐 거래소 영역에 손을 뻗고 있다.

세상을 틀에 박힌 사고로 보지 않은 덕에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공스토리를 썼다. 다니던 대학을 2008년 그만둔 게 대표 사례다.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지금 그의 사무실은 여의도 한복판이 아닌 강남 단독주택에 있다. 여의도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투자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소신이 반영된 결과다. 그는 "금융업은 자본주의가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며 "지금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20대들이 여기서 무한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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